의지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주체로서의 주관성을 갖고 있다.

주관성은 자신이 주체가 되어 인식하고, 욕망하는 것, 느끼는 것이 가능해진다.

이런 특성을 칸트는 정신의 능력으로 이해하였다.

순수이성비판은 인간이 인식능력이 저절로 제공해주는 이런 선천적인 요소들을 위해

형식 (Form)이라는 개념을 사용했다.

이 형식은 선험적 감성론에서는 공간과 시간이라고 하는 직관형식이고

선험적 분석론에서는 사고의 형식, 또는 사고의 범주이고,

마지막으로는 선험적 변증론에서는 범주와 비슷한 이념(Idee)이다.

이로써 칸트는 자기의 선험논리학을 특별히 강조한것이 다.

선험논리학이란 경험과학과는 대립되는 것으로 인간의 이성이나 오성이

선천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입증하려 한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선천적인 형식에 있어서는 정신이 능동적, 자발적으로 움직인다는 것이다.

이는 의지의 특성과 연관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인간의 이성이나 오성은 인식의 능력을 스스로 갖는 것으로 선천적으로 규정되기 때문이다.

칸트의 선험적 감성론에서는 다시 선천적인 특성으로서 공간과 시간이 다루어진다.

공간과 시간관념은 추상을 통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은 언제나 있어야 할 관념이라는 것이다.

더욱이 공간과 시간은 일종의 보편적인 개념이 아니라 개별적인 관념이라는 사실이 중요해진다.

이는 칸트가 주관성을 의미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그는 선험적 감성론의 끝부분의 중핵에서 모든 잘못된 해석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한번 자기의 부관주의를 강조하고 있다.

인간이 주체, 또는 감각 전체의 주관적인 성질만이라도 제거해버린다면,

공간과 시간 안에 있는 객체의 모든 성질과 모든 관계가, 아니 공간과 시간마저 사라져 버릴 것이며,

그리고 이것들은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현상으로서,

인간 안에만 존재할 수밖에 없다는 이유 때문이다.

이는 다른 것이 아니라 칸트의 인식론이

언제나 주관주의를 표방하는 것으로 볼 수 있는 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니까 칸트가 이성의 선천성을 강조하고는 있지만

실제로는 이성의 주관성을 강조하고 있는 점이라고 볼 수 있는 근거이다.

물론 칸트의 순수오성은 스콜라적인 형식과 아베로에스(Averrooes)적인 형식의

능동이성(intellwectwuswag.eenas)r과는 동일한것은 아니다.

아리스토텔레스적인 누우스(Nous, 정신)는 인간에 의해 알맞게,

남김없이 인식 되는 내용은 아니라고 해도, 어떻게든 형성된 내용,

즉 예지의 세계에서 존재하는 여러 이념들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다 해도 이는 칸트가 선험적인 주관주의를 자기의 아프리오리(apriori)를 통해서

흄의 심리적인 주관주의와 어느 정도 그 맥을 같이 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점이기도 하다.

그런 이유로 칸트는 이성이나 오성의 능력을 밝히려는 노력이

결국에는 인간을 움직이는 그 중심적인 특성의 하나로 의지적인 점을 다루고 있다고 볼 수 있는 점이다.

그러면 한 가지 사실이 분명해진다고 볼 수 있다.

이성의 능력, 그것은 의지로 나타나는 것으로서

자발적이면서도 매우 주관적인 특성을 가진다는 사실이다.

이는 의지의 주관성을 드러내는 측면의 하나로 볼 수 있는 점이기 때문이다.

참조문헌 : 카지노게임사이트https://sdec.co.kr/?p=2115

Avatar

By admin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